사해를 누비는 백주의 깊은 풍미
종행사해(纵横四海) 52%
우연히 술장에서 발견한 술 한 병이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줄 때가 있다. 이 술.. 내 기억에 없는 술인데.. 왜 술장에 들어있는거지? 아마도 중국에 놀러갔다가 엉겹결에 사놓고.. 이 곳에 넣어놨나보다.
종행사해라고 써있는 이술은 중국 백주다. 알다시피 중국 백주의 세계는 워낙 광대해서 뭐.... 죽을 때까지 마셔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뭏튼 이 술..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종행사해 (纵横四海) ’라는 이름을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사방의 바다를 종횡으로 누비다’는 뜻이다. 이는 단지 지리적 야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후난성 지저우(吉首)에서 시작된 백주 브랜드 '주귀주(酒鬼酒)'의 정체성과 철학, 즉 지역 전통에 뿌리를 두되, 시대의 흐름과 함께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는 자세를 압축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 술은 '푸위샹(馥郁香)'이라는 독특한 향형을 따른다. 이는 강한 곡물 향의 ‘농향형(濃香型)’과 산뜻한 ‘청향형(清香型)’의 중간에 있는 풍미로, 비교적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의 균형을 잡은 스타일이다. 후난 지역 특유의 발효 기법과 고온 다단 증류, 숙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맛과 향]
잔을 들고 코를 가까이 가져가니, 먼저 꽃향기와 잘 익은 과일의 아로마가 가볍게 퍼졌다. 뒤이어 곡물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감싸며 안정감을 줬다. 향 자체는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게 확산되었으며, 백주의 높은 도수(52%)에도 불구하고 강한 알코올 자극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첫 모금은 의외로 순했다. 목넘김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매끄럽고 둥글며, 혀 위를 타고 고소한 단맛이 은근히 퍼졌다. 고량(高粱)과 찹쌀의 조합이 주는 감칠맛과 약간의 설탕 뉘앙스는 입안에 머무는 여운을 길게 남는다. 뒤따르는 회미는 깔끔하고 드라이한 마무리를 갖되, 끝맛에서 은은한 곡물 향이 다시 피어오르며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준다.
‘종행사해’는 그 이름처럼 거창한 표현보다, 실제로는 섬세하고 조용히 스며드는 매력을 지닌 술이다. 전통 백주 특유의 무게감이나 향의 과함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이상적이다. 고도수 술임에도 불구하고 과하지 않고, 마실수록 입안에서 다양한 레이어가 풀리는 구조감이 돋보였다.
기름진 중식 외에도 가벼운 견과류나 마른 안주, 또는 흰살 생선구이와 충분히 잘 조화를 이룬다. 단순히 독한 술이 아닌, 음미할수록 진가를 드러내는 술이라는 점에서, 백주 입문자뿐 아니라 오랜 애호가에게도 권하고 싶은 한 병이다.
[가격]
‘종행사해(纵横四海) 52%’ 의 판매처나 가격은... 잘 모르겠다. 술장에 이 술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 기억해낼 수도 없다. 다만 검색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중국 시장 기준으로 500ml 기준 대략 178위안 (약 35,000원)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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